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 아, 진짜?"

20여 년 전 일이다. 후배 노총각 기자 하나가 데이트를 했더란다. 참한 아가씨와 찻집에 마주앉아 처음 만나는 자리였는데, 어색함을 피하기 위해서였는지 여자가 무슨 말을 하더란다. 이 노총각의 반응은 이랬다.
“저런!”
그 반응에 용기를 얻은 그녀는 후속 얘기를 이어갔고, 이 노총각은 그 여자의 말미에 이런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래요?”
두어 시간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어진 두 사람의 대화는 그렇게 흘러갔다.
“재잘재잘……”
“저런!”
“조잘조잘……”
“그래요?”
…… “저런!” …… “그래요?” …… “저런!” …… “그래요?”

이제는 대학교수가 된 그 후배, 두 시간 동안 ‘저런!’과 ‘그래요?’ 단 두 마디로 참한 여인을 사로잡았고 20여 년을 같은 집에서 살고 있다.

또 몇 해 전 이야기다. 나이가 들면 앞날에 대한 희망은 점점 줄어들고 옛날 얘기만 늘어나는 법, 이해 바란다.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아들놈에게 무언가 얘길 했는데 이놈 반응이 놀라웠다.
“아, 진짜?”
이 녀석이, 지 애비가 한껏 얘기를 했더니 한다는 소리가 진짜냐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의 놀라움이란!
아들 녀석이 애비의 말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자책감으로 괴로워하던 나날은 얼마 후 끝이 났다. 사무실에서 새내기 여직원들에게 별로 시답지 않은 얘기를 하는 도중이었다. 무슨 말끝엔가 그녀들의 반응이 바로 “아, 진짜요?”였다. 나이나 직책에 따른 말끝 올림 표시 ‘요’라는 글자 하나 덧붙인 모양새의 “아, 진짜?”였다.
그제서야 나는 이 단어가 요즘 신세대들의 ‘아무 뜻 없는’ 추임새라는 걸 알았다.
“그렇군!” “어허!” “저런!” 이런 말들이 우리 세대의 추임새라면 요즘 신세대들은 “아, 진짜?”라는 말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일종의 감탄사로 인식되는 추임새는 어느 세대에나 있어왔을 것이다. 그러나 참 이상하게도 우리 세대에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의미를 포함하는 단어가 그 역할을 했는데 언제부턴가 이 말이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채 쓰여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보다 나이가 더 많은 어르신들이 젊은이들의 말을 들을 때는 분명 나보다 더 많이 당황하셨을 것이다.
나는 나름대로 시시콜콜 알아듣기 쉽도록 설명을 하는데 다 듣고 난 후의 반응이 “그 말, 진짜냐?”라면 누군들 기분 나쁘지 않을까. 요즘 젊은이들은 이런 경우 어떤 반응을 보일지 정말 궁금하다. 더불어 앞으로의 신세대들은 또 어떤 말을 이런 추임새로 사용할지 자못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