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만에 노란 물이 들었다.
넋놓고 바쁜 일 처리하느라 내다보지 못했던 창밖의 풀들이 가을의 급습을 받은 것이다.
'오늘이 처서네..' 하는 말을 귓등으로 흘려 들은 지가 며칠 전이지 싶은데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연은 가을맞이 준비를 하고 있다.
TV 없이 산 세월이 30년이라 <나는 누군가, 여긴 또 어딘가> 하는 가사가 어느 노래에 나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되뇌일 수밖에 없는 순간이다.
나는 누군가, 또 여긴 여딘가.
내 몸이라 생각한 이 몸이 정말 내 몸이며, 내가 있다고 생각한 이 가을의 초입이 정녕 내가 있는 곳일까...
몸이라는 껍데기만 이 세상에 남겨 두고 진짜 나는 아득한 다른 세상에 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세상에 힘것 뿌리박고 살아도 안심이 될 만큼 그 누군가가, 혹은 그 무엇이 나를 튼튼하게 결박지어 주었으면 좋겠다.